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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귀화한 성씨들

정보
작성자
우주사랑
작성일
2022-04-14 16:36
조회
410


O 화산 이씨 (베트남왕족)                                위사진은 배우 이세희

; 화산 이씨는 비(非)베트남계 귀화 성씨로 중시조는 이용상(李龍祥)이다. 시조는 베트남 리 왕조(이조)의 개국황제인 이태조 이공온(李公蘊·Lý Công Uẩn)이며, 중시조 이용상은 7대손이며, 6대 황제 영종 이천조(李天祚·Lý Thiên Tộ)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또한, 정선 이씨의 시조 이양혼과는 종손과 종조부 사이며, 1226년 정란에, 왕족들이 살해당하자 화를 피하기 위해 측근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표류~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당시의 고려 고종은 이를 측은히 여겨, 그에게 그 지역의 땅을 주었으며, 그를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하고 정착을 도왔으며, 원나라 침입 때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몽고군과 싸워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용상을 시조로 받들어, 본관을 화산으로 삼았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상곡 마씨 (명나라장군)

; 조선 정유재란때 명나라 해군 제독 마귀장군 후손 훗날 마귀장군의 증손 마순상장군이 후금과 싸우다 심하전투에서 후금군에게 전멸하자 조선으로 귀화 함.

 


O 덕수 장씨 (아랍 장수)

;  덕수장씨(德水張氏)의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본래 위구르계 사람으로 충렬왕  고려에 귀화했다. 그는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必闍赤)라는 벼슬을 지낸 장백창(張伯昌)의 아들이다. 《덕수장씨족보(德水張氏族譜)》와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그는 충렬왕비 제국공주(齊國公主)를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져 덕수현(德水縣)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으므로 후손들이 덕수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덕수장씨(德水張氏)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사성 김해 김씨 (조선시대 왜군 사무라이)
; 조선 임진왜란 당시 왜군 사무라이 "사야가" 조선군에 항복하여 선조로 부터 김씨를 하사 받음.

 


O 청해 이씨 (여진족족장)

; 시조는 고려시대 여진족 출신인 이지란(李之蘭, 1331년(고려 충혜왕 1년) ~ 1402년(조선 태종 2년))이다.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이다. 이지란의 아버지 아라부카(阿羅不花)는 여진(女眞)의 금패천호(金牌千戶)였다.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가 원나라 말기 1371년(고려 공민왕 20)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함경도 북청(北靑)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 받았으며, 이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해백(靑海伯)에 봉해졌다. 청해는 북청의 별호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년 ~ 1408년)보다 4년 먼저 태어났지만 늘 전장을 함께 하면서 주군으로 모셨다. 뒷날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남양 제갈씨 (한나라 출신 제갈규)             위사진은 제갈성렬

; 촉나라 승상을 지낸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고 있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신라 미추이사금 때 신라로 망명하여, 남양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고려 고종 때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가 형인 제갈홍은 제씨(諸氏)로 하여 낭야군(瑯琊君)에 봉해지고, 아우 제갈형은 갈씨(葛氏)로 하여 남양군에 봉해지면서 성씨가 나뉘었다. 조선 고종 때 성씨 복원운동으로 제씨와 갈씨 일부가 제갈씨로 복성(復姓)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광동 진씨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장군)

; 시조 진린(陳璘)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명나라 수군 제독으로서 조선과 연합하여 일본을 물리치고 전공을 세웠다.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泳素)가 명나라에서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 청나라에 멸망된 후 조선으로 동래하여 전라도 남해 장승포에 표착하였다가 전라도 강진군 고금도로 옮겨 살았다. 그 후 다시 전라도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경주 설씨 (몽골군[원] 장수)                        위사진은 설총

;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을 진압하다가 실패해서 몽골대신 고려로 귀화를 해서 경주 설씨 시조가 됨 

설(薛)씨의 기원은 신라 건국 설화의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기원후 32년)에 6촌이 6부로 개칭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칠 때 성을 설(薛)씨로 사성받고 경주를 본관으로 하였다.[1]

신라시대 설총 원효대사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국학(國學)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吏讀)를 집대성하였다. 31대 인손은 순창을 본관으로 분적하였다.

고려시대 대대로 의술을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난 설경성(薛景成)은 의술에 정통하여 처음에 상약의좌(尙藥醫佐)에 보임되었다가 거듭 승진해 군부총랑(軍簿摠郞)이 되고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승진했으며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로 전임한 후 벼슬에서 물러났다. 충렬왕은 병이 들 때마다 설경성(薛景成)을 주치의로 삼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나중 특별히 찬성사(贊成事)까지 역임하였다. 설경성의 아들 설문우(薛文遇)는 과거에 급제해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까지 지냈다.[2]

경주 설씨는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10명, 생원·진사 7명을 배출하였다.

현대인물 : 한국학강사 설민석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연안 인씨 (몽골군[원] 장수)

; 제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온 인후라는 장수가 귀화해 고려 인공수 장군 성을 빌려서 자신의 성씨를 연안 인씨로 정착 함. (교동 인씨 인공수)

 


O 함박 김씨 (왜군 사무라이)

; 왜군의 좌부장 김충선과 함께 조선에 귀화해서 김성인이라는 이름 하사 받음.

 


O 병영 남씨 (네덜란드 상인)

; 조선시대 네델란드 하멜 일행 7명 이들이 훈련도감장교로 채용 되였는데 곡구으로 가는것을 거부하고 조선으로 귀화 함.

 


O 소주 가씨 (명나라 장수)     위사진은 가애란아나운서

;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명나라장수 "가유약"의 손자 "가침"이 종전 이후 조선에 정착해서 소주 가씨가 되였다.

 


O 해주 석씨 (명나라 장수)

; 해주 석씨(海州石氏)는 황해도 해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석성(石星)은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명나라 국운이 쇠하여진 책임을 지고 투옥(投獄)되자, 그의 아들 석담(石潭)이 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나주 나씨 (송나라 사신)

; 시조 나부(羅富)는 송나라 예장(豫章) 사람으로 나라가 위급해 지자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고려에 왔다가 송이 멸망함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전라도의 여황(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정착하였는데, 어질고(累仁) 덕(德)을 많이 베풀었으므로 호남(湖南)의 망족(望族)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부(羅富)는 고려조에서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이란 무관직(武官職)을 지냈다. 감문위(監門衛)는 중앙군(中央軍)의 일부로서 궁성(宮城)의 수비(守備)를 담당(擔當)하는 부서이고 상장군(上將軍)은 그 부서(部署)의 책임자로서 품계는 정삼품(正三品)으로 정의대부(正議大夫)이다. 시조의 중국 행적은 사료로는 밝혀지지 않는다.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시대 영동정(令同正)에 오른 나득규(羅得虬)를 1세조로 한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O 묘금도 유씨 (유비)     위사진은 유재석


; 송나라에 유비에 후손 "유전"이 송나라 병부상서(국방부장관)을 지낸 대학자로서 송이 망하자 고려로 망명하여 당시 강원도에 정착 함.

 


O 옥천 육씨 (오나라 육손)

옥천 육씨(沃川 陸氏)의 시조 시조 육보(陸普)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사람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 고려 태조 10) 당 명종(明宗)이 문학전례지신(文學典禮之臣)을 뽑아 신라에 선교사(宣敎師)로 보낼 때 홍은열(洪殷說)·정한 등과 함께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신라에 동래(東來)하여 뛰어난 공적을 쌓아 경순왕의 부마(駙馬)가 되었고, 관성군(管城君)에 봉해졌다. 관성(管城)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옛 지명이다.

그러나 중간 계대(繼代)를 실전(失傳)하여 고려 충렬왕 때 주부(主簿)를 역임한 육인단(陸仁端)을 1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왔다.
                                                                                                                                     [출처 : 위키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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